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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야기 한민족 역사탐험(2)

2015.08.09 22:31

xemasa 조회 수:11422

[제마신령]"한민족 역사탐험".... (2) “신라명신(新羅明神)과의 대화”

 

 신라신사_향사비.jpg



 


신라신사_설명.jpg

 

 

신라신사(新羅神社)

모시는 신의 유서

하나, 모시는 신

- 스사노오미코토(素盞嗚尊:소잔오존)

둘, 모시는 신상

- 치죠(智証:지증)대사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신라다이묘신(新羅大明神:신라대명신)의 목상

셋, 유서

- 이마죠(今庄:금장)마을을 세운 수호신

헤이안 시대 율령시기에 창건된 신사로 일컬어지고 있다.

 

「*엔기시키(延喜式)」의 *시키나이샤(式內社)「시로키히코(信露貴彦) 신사(神社)」

*엔기시키(延喜式) : 헤이안시대의 율령

*시키나이샤(式內社) : 시기에 창건된 신사

 

55대 몬도쿠(文德:문덕)천황이 다스리던 진쥬(仁寿:인수)3년 (853년)

치죠대사(円珍僧都:엔친소-즈)는 불법을 구하기 위해 당나라로 건너갔다.

그 뒤로 천안(天安:텐난) 2년, 고려국(高麗國)의 항구를 통하여 귀국하던 도중 사나운 폭풍을 만나 배가 거꾸로 뒤집힐 정도의 파도에 방향을 잡을 수 없었다.

그때, 대사는 신들이시어 『가호를 내려주시옵소서』라고 일심으로 기원하였다.

그러자 불가사의하고 멋진 모습의 신이 나타났고, 곧바로 풍파는 얌전해졌으며 무사히 일본으로 귀국할 수 있었다.

세이와(淸和:청화)천황(天皇)이 다스리는 시기가 되었고, 정관원년(貞觀元年)(809년), 치죠대사는 폭풍의 속에서 위대한 힘을 보여주신 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일심으로 기원하자, 그 신은 모습을 드러내셨고나는 야마토(大和:대화)국(國)에서 건너와 신라국(新羅國)의 수호신이 된 자이다.』라는 말씀을 받아 대사는 서둘러 그 신의 모습을 조각하였고, 신라다이묘신(新羅大明神:신라대명신)라고 불리우며 귀하게 모셔졌다.

그 이후, 이 신상은 미이테라(三井寺:삼정사) 오쯔시(大津市)·온죠-지(園城寺)에 모셔졌으나, 전란을 피하여 북쪽으로 도달했으며 여기 신사에 모셔지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신라신사라 불리는 이름은 신라사부로요시미츠(新羅三郞義光:신라삼랑의광)의 령(靈)을 모시는 것으로도 일컬어지고 있다.

* 신라사부로요시미츠(新羅三郞義光)

: 친지유부(鎭守府:진수부)장군(將軍) 미나모토(源) 요리요시(賴義)의 셋째

 

신라신사의 본전은 원래 아타고산(愛宕山:애탕산)의 정상에 있었으나 쥬에이(寿永:수영)2년 (1183년) 기소 요시나가(木會義仲:목회의중)가 헤이케(平家:평가)군(軍)을 물리치기위해『히우치가(燧ケ:수케)성(城)』을 세울 당시 성 측면에 옮겨졌고 그 뒤에 천문(天文)년(1532년~1555년)사이에 산레이(山麗:산려)의 현재 자리에 옮겨졌다고 한다.

 

신라신사(新羅神社)

 

 

<참고>

이 간판에서 흥미로운 점은 통상적으로 일본인들이 新를  시라기- 라고 읽는데

이 지역의 신사에서는 원음 그대로 신라- 라고 읽는다는 점입니다.

 

 

 


 

스사노노미고토에 관해서 신라신사의 안내판에 나온 내용을 보면 신화왜곡의 중요한 페턴 하나를 확실하게 드러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본의 智証대사가 중국에 갔다가 돌아오다가 신라영토의 항구에 신세를 지고 배를 탔는데 극심한 풍랑을 만났답니다. 그런데 그때 흰 수염을 기른 신라명신의 도움을 입어 목숨을 구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1년쯤 지나서 이 스님이 기도하니까 신라명신이 도운 것은 야마도(고대日本의 나라명칭)신의 휘하에 있었기 때문에 도움을 준 것이라고 확인해 줬다고 합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은 이 신당에는 분명히 노인장이 계셨고 그분이 구해준 게 분명한데 굳이 야마도신은 왜 또 등장하느냐 하는 의문점이 생깁니다. 그들의 신화에 보면 스사노노미고토신이 야마도신(大和神)이고 신라를 점령하러 가서 신라국의 수호신이 되었다는 좀 말도 안 되는 내용이 나옵니다. 물론 신화라고는 하지만, 내용이 너무 황당합니다. 만일 그런 일이 정말 있었다면야 인정할만하지만 터무니없는 내용이었지요. 그렇다면 왜 안내판에 그런 내용이 적혀있어야 하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후대에 와서 생각해 보니 신라신의 도움은 신라의 도움으로 개념이 이어지니까, 아무래도 신라국적의 신에게 구원을 받기는 했지만 그런 사실을 있는 그대로 자존심이 허락을 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신라명신의 실체가 신라국의 수호신이라 자처하는 스사노 神일지라도 , 야마도의  스사노신 역시 그 신의 뿌리가 소서노임을 유추해 본다면 이리가나 저리가나 한반도의 신임이 분명합니다. 우리 조상님들이 일본 땅에 건너가서 신이 되어 있던 마당에, 신라명신의 실체가 스사노신이라고 한들, 그 뿌리가 한반도에서 유래하였음을 근본적으로 왜곡시킬 수는 없는 셈이지요.  

 

 

 

 

 

아래에 신라신사 도리이(鳥居) 가 서있는초입에서 만나 뵌 신라명신께서 저에게 하신 말씀을 들은 그대로 옮겨 봅니다.

고대 신라 말로 말하시면 못 알아들을까 봐 일본어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俺明神卽語레리

俺成리니述레바

確僞노미殘시

其故本心離레바노

明神소 言에바 新羅明神成리다꾸

何故 스사노도言우神 表와레

功오 奪우조

靜니 沈메데

有難기 存知마스루

 

<해설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명신으로서 말하고자 하니

내가 있는 자리에서 말하자면

확실히 거짓을 남겼으며

따라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남김으로서

명신이라고 하자면 신라명신이어야 함에도

어찌하여 스사노신이 나타나는지

공덕을 뺏으려는가

 

조용히 입 다물고

그저 님에게 감사드릴 뿐이요

 

2015년 8 월 9일 신라명신 서산 장선생 선심화 묘연제 김세환

 

[참고자료]

 

일본의 신라신사

[역사적 변천]

 

이 신사의 건립시기는 분명하지 않다. 과거에는 화축산(火燧山)에 있었으나 덴몬(天文) 연간(1532∼1554)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그리고 1627년에 이 지역의 봉건 영주인 마쓰다히라타다마키(松守忠昌)에 의해 사전(社殿)이 재건되었다.

 

그러나 1871년에는 같은 지역의 시라히게신사(白鬚神社)에 합병되었다. 그 뒤 1875년에는 다시 분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제신에 대한 제사는 매년 5월 8일에 정기적으로 치러지고 있다.

 

[내용]

 

일본어로는 시라기진자라고 한다. 현재 모시고 있는 제신(祭神)은 스사노오노미코토(素盞鳴命)를 비롯한 오호아나무치노미코노(大已貴命) 이외에 4명의 신이다. 그 중 주신(主神)은 스사노오노미코토이다. 927년에 성립된 『연희식(延喜式)』이라는 문헌에는 시라기히코신사(信露貴彦神社)로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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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에 이 신사의 주신인 스사노오노미코토가 그의 아들인 이타케루노미코토(五十猛命)와 함께 신라의 소시모리(曾尸茂梨)라는 곳에 있다가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내용의 설화가 있다. 이처럼 스사노오노미코토는 신라와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 신이다. 일설에 의하면 그의 본래 고향은 신라라는 견해도 있다.

 

이 신사와 같은 이름의 신사가 이곳 이외에 기후현(岐阜縣)의 도키군(土岐郡)에도 있으며, 또 효고현(兵庫縣) 히메지시(姬路市)의 아케다(明田)에도 있다. 기후현에 있는 신라신사의 제신은 하치만대신(八幡大神)ㆍ하치오지신(八王子神)ㆍ스사노오노미코토이며, 효고현에 있는 신라신사의 제신은 신라대명신(新羅大明神)으로 되어 있다.

 

그밖에도 신라의 일본식 발음인 ‘시라기’라는 이름으로 신사명을 사용하는 경우의 예는 쓰루가(敦賀)의 구쓰미(沓見)에 시라기신사(信露貴神社)가 있고, 또 와카사(若狹)에도 시라기신사(白城神社)가 있다. 후쿠오현(福岡縣) 등지에서는 시라기신사(白木神社)라는 이름으로도 산재해 있다는 것이다.

 

이상에서처럼 일본에서 신라신사를 표현할 때 직접 그 한자표기를 하는 경우 이외에도 일본식 발음표기인 신로귀(信露貴)ㆍ백목(白木)ㆍ백성(白城) 등으로 나타내는 경우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민족문화백과사전]